울주 입암리 유적은 도로부지 개설사업으로 인해 발굴 조사된 대규모의 복합유적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또한 태화강에 의해 퇴적된 충적지로 농경, 수렵, 어로, 채집 등 인간의 다양한 생업활동에 적합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유적의 입지와 지형과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발굴조사는 A~D지구 지역으로 나누어 실시하였으며,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총 89기의 유구가 발굴조사되었다. 구석기시대는 밀개, 찌르개, 톱니날석기 등의 도구와 몸돌과 격지 등이 출토되었다. 토층과 유물 등을 통해 후기 구석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 유구는 수혈유구 16기, 집석유구 5기, 주혈군 등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문양이 없는 토기편, 남해안식 태선침선문 등이 시문된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주거지 16기, 수혈 1기, 구 5기, 야외노지 1기, 주혈군 1기, 입석유구 5기, 함정유구 7기, 굴립주 1기로 총 37기로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주거지는 (장)방형의 평면형태로 면적은 중소형이다. 주거지의 형성이 충적지에 위치하는 특수성 대문에 벽구와 배수구는 발달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유물은 공열문과 낟알문이 시문된 무문토기, 석촉,석도, 어망추, 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는 형태나 구조, 유물 등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삼한시기와 삼국시대 유구는 총 27기이다. 유물은 원형점토대토기, 두형토기, 석착, 미완성석기, 파수부호, 우각형파수부편, 야요이 토기 등이 출토되었으며 기존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시기는 B.C. 3~2C로 추정된다. 옹관묘는 단옹식으로 3기만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주거지는 삼한시대 후기~삼국초기(A.D 3~4C)에 해당하는 구조적인 형태에 속한다. 평면형태는 밀각방형계이며 내부시설로 부뚜막, 벽주식, 벽체시설이 확인된다. 하지만, 울산지역에서 한쪽벽면이 돌출된 출입구 형태와 11호 주거지의 부석식 노시설, 12호 주거지에서 부석식 노시설 위에 지각(1차:돌, 2‥3차:토기)을 3번 겹쳐 세워 부뚜막으로 전환하여 사용한 것은 입암리 유적에서 보여지는 성격과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울주 입암리 유적은 충적지에 입지하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여러 시대에 걸쳐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