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연자도유적은 온산국가산업단지 개발사업을 실시하면서 공장부지 조성에 앞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고려시대 온돌 건물지를 비롯한 건물지 21동, 수혈식 주거지 6동, 수혈유구 278기가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지 내에 설치된 온돌 구들과 아궁이, 개자리 등 형태가 다양하고 변화 양상이 뚜렷하여 우리나라 온돌시설의 변화와 발전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건물지와 수혈에서 출토된 유물은 청자 414점 이상, 도기 159점 이상이며 기와도 어골문 중심의 막새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금속유물로는 금동불상과 철솥, 철추 등이 건물지 내에서 출토되어 그 시기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수혈에서 출토된 도가니 2점은 자연과학적 분석을 의뢰하여 청동 도가니임을 확인하였다. 특히 지금까지 청자의 중심지에서 다소 벗어난 지역이라고 여겨졌던 울산에서 12~13세기대의 양질의 청자가 다양하게 출토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며 과히 놀랄만한 일이라 하겠다. 출토된 청자의 다양한 기종과 문양, 태토 받침 등을 철저히 분석하여 울산지역의 지역색을 반영한 청자의 편년을 설정한 것은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유적이 입지한 지형적 특성과 잔존하는 유구의 특징들을 통해 검토해보면 유적의 성격을 크게 두가지 정도로 추정할 수 있겠다. 먼저 울산지역의 호족세력들이 몽고침입에 즈음 나라의 명을 받아 섬으로 들어가 기거하면서 조성한 해도입보 유적일 가능성이다. 유적에서 유일하게 존속시기가 확인되는 청자의 존재시기가 12~13세기대를 넘어서지 않고 있으며 이것은 이 유적이 단기간 동안에 조성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항시 사람이 생활하고 활동한 지역이 아니라 일시적인 특수상황으로 인해 조성된 임시거처와도 같은 유적이다.
두 번째로는 울산지역과 경상도 일대를 근거로 한 해상무역의 거점지역으로 활용하였을 가능성이다. 유적 내에서 확인되는 온돌을 설치하지 않은 창고로 추정되는 건물지 시설과 위세품 성격이 강한 수입자기의 확인, 양질 청자의 다량 출토 등은 해상무역이 활발하였던 고려 후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경제적 기반을 가진 이들의 생활과 생업의 근거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이다.
울주 연자도유적 발굴조사는 울산지역 고려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생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확한 자료를 제공하는 발굴조사로서 고려 말 몽고침입과 관련한 정치적인 상황까지도 고려하여 연구할 만한 중요한 유적이다.
울주 연자도유적은 섬이라는 이유로 13세기 이후 지금까지 훼손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던 귀중한 유적이다. 이 유적의 조사 결과는 울산지역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생활상과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보고서에 미처 다 수록하지 못한 자료의 해석과 자세한 사항들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더 면밀히 검토하여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