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 7년(1476) 축조된 울산읍성은 정유재란(1597) 때 울산왜성 축조를 위해 돌을 헐어내어 훼손·폐기되는 과정을 지나 기록에만 남아 있을 뿐 그 실체를 찾지 못하다가 2019년 발굴조사를 통해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울산읍성은 함월산이 위치하는 북서쪽이 높고 태화강이 흐르는 남동쪽이 낮아지는 지형을 따라 조성된 성곽으로 읍성의 남서쪽 구간에 해당하는 조사지역은 해발고도 2~4m 사이에 위치한다. 조사에서 면석, 기대석, 지대석, 박석 등 외벽부와 면석, 박석, 내탁부 등 내벽부가 확인되어 울산읍성의 온전한 체성 구조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일대가 태화강의 잦은 범람 등으로 인해 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저지대 충적지로 읍성은 점성이 강한 점토층 위에 조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탁부 조성 시 통나무를 사용하거나 기저부 박석 아래에 부엽공법을 적용하였다. 체성 상부나 내탁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분청사기가 주를 이루고 성곽의 폐기 이후 퇴적층으로 보이는 조선시대 문화층에서는 후기 백자가 다수이다. 이처럼 출토유물만으로도 초촉 당시 층위와 성곽 폐기 이후 퇴적된 층위가 명확히 구분되고 있으며 ‘1476년 시축하여 1477년 완공하였다.’는 울산읍성의 축조시기에 관한 기록과도 부합한다.
울산읍성은 조선 성종 때 축성된 성곽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조선 전기 축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특히 울산지역 조선시대 성곽 축조 흐름에서 병영성(1417년)-울산읍성(1476년)-언양읍성(1500년)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기대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