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학교교육 체제의 핵심은 학교가 소위 선량한 시민을 양성하고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노동자로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종교 교단이 장악하고 있던 서구의 교육체제는 국가 교육체제로 전환되었고 공립학교도 확대되었다. 산업혁명의 급속한 진전으로 생산성이 높은 양질의 노동력을 길러낼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근대적 학교교육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따라 공고화되었다. 한 명의 교사가 여러 명을 가르치고 학습 도구가 칠판과 분필, 교과서로 이루어진 학교 교실의 모습은 이때부터 만들어진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 발전도 이러한 서구의 학교교육 시스템 도입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은 개인의 삶보다는 사회적 요구나 공적 목적이 강조되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을 위한 역사적 사명을 수업시간에 암송하고 집단의식을 강요받았다. 이러한 집단적 교육과 지식 전수 중심의 교육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것이 진보주의(Progressivism) 교육이었다. 진보주의 교육자들의 문제 제기는 기존의 학교체제가 획일적이고 개인의 욕구와 흥미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진보주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생활 그 자체이며 개인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실질적으로 유용한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 본다. 진보주의 교육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학급을 집단으로 가르치는 전통적 접근에 반대한다. 진보주의 교육은 20세기 듀이에서 출발하여 미국교육의 큰 흐름이 되었다. 진보주의 교육은 우리나라 교육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교육의 핵심 방향은 학습자의 흥미와 욕구에 따라 다양한 학습 선택의 자유를 줄 수 있는 교육으로 전개되었다. 진보주의 교육의 주요한 원리는 ‘교육은 아동의 흥미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보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아동의 욕구에 따라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대안적 학교들이 속속 생겨났다. 현재 개편된 제11차 교육과정의 핵심 내용도 다양한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 개설에 두고 있다. 학교는 학생의 특수한 개인적 자질의 발달에 관해 관심을 두며, 개인은 자신의 노력에 상응하는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아이들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고 걱정한다. 이러한 문제가 모두 교육의 결과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진보주의 교육 사조가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진보주의 교육 사조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학습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배우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데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학생의 인격(인성)을 계발하고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학교교육이 담당해야 할 몫 중의 하나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진보할수록 개인보다는 사회구성원이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가 더 많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사회적 갈등이 만연하고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다. 우리에게 직면한 이러한 문제들은 개인주의적 교육으로 극복할 수 없다. 학교는 지나치게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격려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때이다. 학생들이 싫어해도, 학생의 흥미와 요구와 맞지 않아도,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유산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자세와 길을 찾을 수 있다. 진보주의 교육을 넘어 우리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적 대안을 찾는 노력이 시급하다.
신기왕 교육학박사, 울산연구원 책임교육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