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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역서 보기힘든 부장 무문토기등 발굴
언론사 울산신문 조회수 5283
작성일 2011-11-08 게재일자 2011-11-08

http://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7233
지역서 보기힘든 부장 무문토기등 발굴
덕신서 청동기 후반 무덤·유구 다수 발견
newsdaybox_top.gif 2011년 11월 07일 (월) 23:30:55 손유미 btn_sendmail.gifymson@ulsanpress.net newsdaybox_dn.gif
   
▲ 덕신 공동주택부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지석묘와 석관묘에서 울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의례용 무문토기가 발굴되는 등 학계의 관심을 끌고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묘제와 석기류. 토기(아래)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결과 보고서 발간

그동안 울산지역에서 조사된 예가 많지 석관묘와 지석묘 등이 집중돼 나타나는 등 청동기시대 묘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만한 유적이 나왔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는 울주 온산읍 덕신리 572-6 번지 공동주택부지 내 발굴조사 결과를 보고서로 정리한 <학술연구총서 제61집>를 펴내고 이같이 밝혔다.
 이번 학술연구총서에서 다룬 울주 덕신리 572-6 유적은 (주)시즌의 공동주택건립을 위한 구제발굴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발굴조사결과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8동, 지석묘 1기, 석관묘 5기, 토광묘 1기, 솟대유구 3기, 석렬유구 5기, 수혈유구 5기, 구상유구 8기, 삼국시대 석실묘 3기, 통일신라시대 화장묘 1기, 조선시대 주거지 1동, 수혈유구 2기, 구상유구 1기 등이다.
 유물은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39점, 토제품과 석기류가 33점,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토기 31점이 출토됐고 토제품 1점과 자기 1점이 지표채집됐다.
 이 유적에서 중심이 되는 청동기시대 유구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Ⅰ기는 주거지의 형태가 장방형이고 6주식 이상의 대형 주거지로 구성되는 취락이 나타나는 시기로 청동기시대 전기 후반에 해당한다.
 울산지역에서 후기 이후 나타나는 검단리식토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점과 취락의 구성 상 대형주거지와 중소형주거지가 결합돼 나타나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Ⅱ기는 지석묘와 석관묘를 비롯한 무덤과 함께 이와 관련된 솟대유구, 수혈유구, 구상유구 등이 나타나는 시기로 청동기시대 후기 후반에 해당한다.
 특히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구는 울산지역에서는 그 예를 별로 찾을 수 없는 무덤과 이와 관련된 유구가 다수 조사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 지석묘의 경우 울산지역의 지석묘와 석관묘가 2차장으로 시신을 안치하는 것과 달리 그 하부구조가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지석묘 주변에 의례흔적으로 파악되는 다수의 무문토기가 출퇴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 유적의 지석묘는 일반적인 지석묘와 달리 의례적인 성격의 상징적 기념물로 판단되며 이 유적에서 다수 나타나는 용도 불명의 수혈유구와 구상유구가 이를 방증한다. 손유미기자 y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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