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는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맞이한 새로운 시대다. 광역시 승격은 사람으로 치면 로또를 맞은 것이고, 대박이 터진 것이라고 할 만하다. 필자는 신라가 멸망하면서 울산의 수도 외항 기능이 사라지고, 이어서 서기 997년 9월에 고려 성종이 방문한 이후 ‘국제무역항’에서 ‘변방의 군사도시’로 전락했던 울산이 1,000년 세월을 기다려서 맞은 기회가 광역시 승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렇게 귀한 기회를 얻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광역시 승격은 이처럼 오랜 염원이 이루어낸 일이다. 그런데, 광역시 승격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지난(至難)했다면, 승격 이후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승격 과정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광역시 승격은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대비책도 분명했지만, 도시발전을 위한 전략의 경우 무엇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역시 승격 후 우리가 만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몰입한 적이 있는가 묻고 싶다. 표현을 바꾼다면 새로운 광역시의 비전을 만드는데 우리가 가진 역량을 쏟아 부었는지 궁금하다는 의미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순서가 있는 법이다. 필자 생각에는 광역시 승격 초창기 10년 간 할 일과 이후 10년간 할 일은 분명 다르다고 본다. 이글에서는 2000년대 10년간 울산지역 발전의 빛과 그늘에 대해 간략하게 짚어보면서 그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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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10년간 울산에는 울산대공원, 태화강대공원을 비롯한 도시공원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여가·문화공간 확충으로 시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친환경 산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사진은 태화강대공원 전경. 울산매일 포토뱅크 iusm@iusm.co.kr |
■도시·건축·건설·도로행정의 변화
먼저, 시 본청의 행정기구 변화를 살펴보자. 행정기구야 말로 시정의 방향과 역점분야를 가장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도시, 건축, 건설, 도로분야만 추린 다음 행정기구의 변화와 구성원 수만 놓고 보았을 때 지난 10년간 가장 역동적이었던 부서는 교통건설국이고 가장 변화가 적었던 것이 도시국이다. 필자는 광역시 승격 후 지난 10년이 도시계획분야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때로 보았는데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실례로 1997년 승격 당시 도시국에는 도시계획과, 도시개발과, 도시미관과 등 3과가 있었는데, 2010년 말 현재는 이들 3개 과 외에 2005년부터 토지정보과가 더 늘어났을 뿐이다. 다만, 계 단위의 변화로는 이전의 건축과 미관계가 2008년부터 ‘도시디자인팀’으로 바뀌어서 경관법 제정 이후 도시경관 관련 업무를 보는 정도다.
도시계획분야를 담당하는 시 산하기관으로 울산발전 연구원이 문을 연 것이 2001년 2월 21일이다. 이날 무거동 남운프라자에서 이현재 전 국무총리와 그 당시의 심완구 시장과 김무열 시의회 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식을 가졌는데, 기획연구실, 산업관광실, 도시환경실, 문화재 센터 등 3실 1센터로 출범했다. 그날 심완구 시장은 “지역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 줄 것”을 당부했고, 서근태 초대 원장은 “지역의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조사연구, 정보자료 센터로서 시정개발 지원체제의 일부가 되도록 노력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울산발전 연구원은 10년이 지난 지금 현재도 3실 1센터 체제인데, 얼마 전에는 ‘도시계획연구실’이 도시환경연구실로 흡수 통합되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울산발전연구원이 지역발전을 위해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조직이 축소되는 것도 아쉬운데 도시계획 연구실이 사라진 점은 더욱 아쉽다.
2000년대 10년간의 울산은 도시공원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였다. 2002년 4월에 울산대공원 1차 시설 개장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사업이 드디어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만 4년 후인 2006년 4월에는 2차 시설이 개장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2004년 12월의 태화강 생태공원 1단계 사업 지구를 개장한 이후 꾸준한 투자가 이어져서 2009년 2월에는 태화강 전망대와 십리대밭교 준공이 이루어졌고, 9월에는 태화강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정비사업도 마쳤다. 이어서 2010년 5월에는 총 사업비 1,196억원을 투입하여 6년여의 공사 끝에 53만㎡의 태화강 대공원이 태어났다. 한편, 과거 울산공단의 공업용수 공급을 위해 생겨났던 선암저수지는 2008년 1월에 선암댐 수변공원으로 거듭났고, 비슷한 시기에 무거천과 여천천도 도심 생태하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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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2월 울산시 신청사가 준공됨으로써 광역시의 위상을 갖췄다. 신청사는 친환경,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 주목을 받았다. 울산매일 포토뱅크 iusm@iusm.co.kr |
■월드컵·국제포경위 개최, 각종 박물관 개관
이 시기 울산에서는 각종 박물관 개관과 국제행사도 많이 열렸다. 2002년 6월 월드컵 울산 경기 개막을 필두로 2005년 5월에는 장생포 고래박물관 개관과 동시에 제57차 국제 포경위원회 울산회의가 개최되었다. 이어서 2008년 5월에는 암각화전시관이 개관했고, 2009년 6월에는 대곡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 대회가 울산에서 열렸고, 2010년 9월에는 옹기엑스포도 개최되었다. 이어서 금년 3월에는 울산과학관이 개관하고 드디어 6월에는 10여년의 준비 끝에 울산박물관이 역사적인 개관을 하면서 울산도 명실상부한 박물관 도시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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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1월 경부고속철도 울산역이 개통됐다. 울산과 서울을 2시간여만에 주파하는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울산은 교통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거듭나게 됐다. 울산매일 포토뱅크 iusm@iusm.co.kr |
국제대회 뿐 아니라 제86회 전국체육대회도 울산에서 개최되었다. 2005년 10월의 일이다. 이 대회를 위해 2005년 1월에는 동천국민체육센터가, 8월에는 종합운동장과 실내수영장이 각각 준공되었다. 이외에 2000년대의 주요 개발 사업으로는 2001년 2월에 고속버스터미널이, 4월에는 문수축구경기장이 완공되었다. 2004년 11월에는 울산경찰청신청사가 준공되었다. 특히 2005년은 많은 기반시설이 생겨난 해다. 앞에서 언급한 체육시설과 박물관 외에도 2월에는 지능형교통체계사업과 울산교통관리센터가, 6월에는 대곡댐이, 9월에는 산업로 확장공사가, 10월에는 태화로터리 구조개선과 주변도로 확장이 각각 있었다. 2006년 7월에는 매곡지방산업단지가 준공되었으며, 2008년 3월에는 가지산 터널이 개통되었고, 12월에는 울산시청 신청사가 준공되었다. 2009년 3월에는 울산과학기술대학의 첫 신입생이 캠퍼스를 밟았고, 드디어 2010년 11월 1일에는 2003년 설치 확정 발표 후 만 7년 만에 경부고속철도 울산역이 역사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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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는 2004년 6월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을 하고 친환경 생태도시 건설을 위해 박차를 가해 왔다. 사진은 태화강대공원 내 기념비 제막 모습. 울산매일 포토뱅크 iusm@iusm.co.kr |
■새 도시 패러다임 ‘에코폴리스’선언
이런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2000년대 울산을 무대로 벌어진 사건 가운데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무래도 에코폴리스 선언일 것이다. 2004년 6월 9일 오후 2시 박맹우 울산시장은 태화강 둔치 야외무대에서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을 했다. 박시장은 이 선언에서 “지난 40여년 간 급속한 공업화 과정에서 환경을 소홀히 한 것을 반성하고 훼손된 것은 복원하고 남아있는 것은 보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2004년을 “친환경 생태도시 건설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이 선언은 90년대부터 추진된 태화강 수질개선 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시발전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실제로 태화강변은 그 후 더욱 잘 정비가 되었고,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인 4대강 사업의 모델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선언 1년 후인 2005년 8월 18일에는 태화강 최상류 청정지역에 길천일반산업단지 지정고시가 이루어지는 등 비전의 맥락이 맞지 않아 보이는 점도 있다. 또 하나의 예로 태화강변을 점령한 주상복합아파트를 들 수 있다. 주로 2002년부터 시작된 울산의 주상복합아파트 건설 붐은 노무현 정부가 아파트 투기를 억제하면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했던 주상복합에 자본이 몰린 탓이지만 어찌되었든 이로 인해서 태화강 제방선 내부의 관리에 큰 성공을 거둔 울산으로서는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이런 점이 행정차원의 실책인지, 시정 철학과 비전의 문제인지 앞으로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