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래 동남권의 작은 소도시에서 인구 110만의 광역시이자 산업수도로 성장하여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도시이다. 즉,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나라의 산업도시로서의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속적인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문화도시로서의 뿌리를 찾는데 다소 미흡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지리적으로 울산은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 동남부지역의 중심지역으로 기능을 해왔다. 강과 바다를 접해 있고, 온화한 기후조건으로 청동기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울산에 몰려들어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인구밀도가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초기 국가시기에는 경주의 사로국, 동래의 독로국, 김해의 금관국과 대치하면서 독자적인 문화 전통을 꾸려왔으며, 신라 시대에는 신라의 대외 접촉 창구와 수도방어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좌병영과 좌수영이 설치되면서 국토 방어의 중핵으로 기능해 왔다. 일제시대 에는 방어진이 일제의 어업침략의 대상이 되었고, 일제말기에는 인구 50만을 수용하는 대도시로 건설하여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삼으려는 계획의 대상지로 거론되기도 한 지역이였다. 이와 같이 많은 의미의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울산지역에 남아있는 역사문화자원이 울산지역 사회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 그 자원의 활용방안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역사문화자원 중 울산의 역사와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주 대상으로 하였다.
울산의 역사문화자원 중 2점의 국보가 모두 선사시대의 유물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울산은 선사문화의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특히 청동기 문화자원은 그 분포밀도가 높고, 유물의 역사성도 중대한 것이다. 후에 신라에 편입되면서 울산은 수도권인 경주 불교문화의 자취가 남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울산은 일본국의 방어를 위한 군사도시였다. 병영과 수영이 위치하였고, 통신시설인 봉수대, 군사용 병마를 길러냈던 목장 등 군사도시로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적이 아직도 많이남아있다. 더욱이 임진왜란때 일본군에 점령되면서 그들이 건설한 왜성도 남아있다.
그밖에 조선후기 이후 최근까지 서민들의 주요 생활도구였던 옹기의 주요 산지였으며, 1919년 4월에는 울산에서 4차례에 걸쳐 만세운동을 일으켜 반외세 자주독립의 기상을 보여준 곳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현재 울산시민들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공유함으로써 울산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자긍심을 지니고, 애착을 느낄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대한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발적인 지역 발전의 의지를 고취시키는 힘으로 작동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지역 역사문화자원에 지속적인 연구와 효과적인 활용방안 모색은 글로벌시대 울산을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