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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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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명 동해안 고총 고분군을 통해 본 울산지역 고분군의 성격
연구부서 문화재센터 과제분류 기본연구
연구진 장정남 발행연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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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연구의 목적  

 1. 연구의 성격 및 목적

  동해안지역 고총고분군들이 여러 전문 학술지와 향토지에 소개되면서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알려진 내용을 보면, 이 지역 고총고분들은 외형적인 규모면에서 엄청날 뿐 아니라 고분군들이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내부 구조를 달리한 것이 많아서 고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평가에 따라 울진에서 포항까지 나타나는 동해안 고총고분군의 양상과 성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같은 동해안 지역에 있으면서도 연구가 미비했던 울산지역 고분군의 양상과 성격도 이번 기회에 같이 알아보았다. 연구는 양지역 고분군의 입지와 유구 및 출토유물을 통하여 상호 관련성을 살펴보고, 편년설정이 없는 울산지역 고분군의 편년을 지금까지 발표된 토기자료를 통하여서 편년을 설정하는 것이 연구목적이다.

 2. 연구의 개요 연구는 동해안 고총고분군의 경우, 국립경주박물관이 영덕 영해면 괴시리와 포항 신광면 냉수리에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인동리에서 각각 발굴조사한 유구와 출토유물을 분석하여 전체 흐름을 정한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지표조사된 자료는 이런 흐름의 보완자료로 이용하여 결과 도출에 참고한다. 울산지역에서 발굴조사된 고분군도 우선은 연구보고서를 통하여 체재를 세우고, 동해안 고총고분군과 일대 지표조사 자료로 보완한다. 그리고난 후 울산지역에서 출토된 토기자료로 울산지역 고분 편년을 설정하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3. 연구내용 요약 울진에서 포항까지 나타나는 동해안 고총고분군 6군데와 울산지역 고분군 21군데를 통하여 그 입지와 양상, 성격 등을 살펴보았다. 첫째, 고분군 입지는 양지역이 모두 배산임수 지형을 한 구릉에 조영된 반면, 동해안 지역은 소하천을 낀 구릉에, 울산지역은 중심수계의 구릉에 위치하는 고분군이 많았다. 두 번째, 양지역 고총고분군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범위를 살펴본 결과, 동해안지역은 공간분할에 따른 주피장자 집단이 이질 집단일 가능성이 많았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가까운 지역에 분포하는 고분군이면서도 유구나 출토유물이 다른 것이 많다. 이 시기쯤 해서 경주는 이미 적석목곽분이 일반적이나 포항 흥곡리, 냉수리에서는 고구려계 횡혈식 석실봉토분이 성행되는 것이 주이유이다. 그렇지만 울산지역은 원삼국시대에는 이질집단, 삼국시대에는 경주에서 파견된 관제집단일 가능성이 많다. 울산지역에서는 가야지역에서 올라온 세장방형 목곽단계의 집단이 경주쪽은 장방형의 목곽집단 집단이 있는 등 근거리에서 이질 집단이 존속한 것 같다. 그러다가 신라가 울산지역을 점령한 이후에는 경주에서 파견된 관제집단이 울산 전지역에 적석목곽분과 석실분을 조영하고 있다. 또 유구는 동해안지역에서 적석목곽, 횡혈식석실분이 확인된다. 이 중 적석목곽분은 북방전래설과 해로유입설로 나누어지는데 일부 연구자들은 동해안에 나타나는 적석목곽분을 두고 해로유입설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적석목곽분이 경주에서는 4세기 중반부터 등장함으로 동해안 지역의 영덕 괴시리 16호분의 적석목곽분과는 약 1세기 정도의 차이를 두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로유입설은 아직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셋째는 포항 냉수리에 나타난 횡혈식 석실분은 규모나 측실이 달린 점과 출토유물 가운데 고구려 요소가 많다는 점이 인정되면서, 고구려계 무덤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이를 두고 고구려 고분이 이 시기에, 왜 신라의 깊숙한 지역인 냉수리에 나타났는가하는 의구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영일 냉수리비와 울진 봉평 신라비 내용에 냉수리는 일시 고구려방이었다는 사실이, 이곳에 고구려계 무덤이 조성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섯째, 울산지역 고분군중 봉토분은 주요 하천 수계에 위치하는데 유구형태는 원삼국시대와 삼국시대로 구분된다. 원삼국시대는 목관, 목곽묘가 공통양식이나 삼국시대 초기에는 적석목곽분이, 경주에서 고분을 규제하던 5세기 후반 이후에는 수혈식, 횡구식 석곽묘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묘제 변천은 해안 보호 정책과 인구 증가와 더불어 추후에는 해안가까지 확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섯째 출토유물은 동해안 지역 고총고분군은 5세기 후반에 성행하여, 포항 냉수리처럼 6세기 후반의 늦은 시기까지 나열되고 있다. 반면에 울산지역은 원삼국시대 고분인 웅촌 하대리 5호가 3세기 중엽에 나타나면서, 늦은 것은 온산 화산리와 방어진 일산동고분군의 7세기 전반 유적까지 확인된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울산지역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가 부족하다보니, 6세기 전반경의 토기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울산지역 고분군의 토기자료가 증가한다면 재고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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