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연구의 목적
ㅇ 목적 :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울산지역 횡혈식석실분의 입지․구조․특징을 경주지역과 비교․분석하여 울산지역 횡혈식석실분의 성격을 규명하고, 신라 삼국통일기를 전후로한 울산지역 고분문화의 이해를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
ㅁ 연구의 개요
ㅇ 조사방법 : 발굴조사 보고서를 통한 자료정리 ․ 자료의 비교분석 및 유물실견, 현지답사 ․ 관련 논문분석
ㅇ 연구 기여도 : 울산지역 횡혈식석실의 등장배경과 변화상 ․ 울산지역 횡혈식석실의 성격규명과 편년 ․ 경주지역 횡혈식석실과 비교하여 지역적 특징을 규명
ㅁ 내용 요약
경주지역 횡혈식석실의 구조적인 특징으로 호석․현문시설․주검 안치시설 등의 발달을 들 수가 있다. 이것은 횡혈식석실이 죽은자의 집인 幽宅 개념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횡혈식석실의 도입 초기에는 추가장이 보편화되지 못하다가 후대로 갈수록 점차적으로 보편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경주지역 횡혈식석실의 계통은 고구려의 남하로 인해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된 지역을 통해 경주지역으로 도입되었고, 적석목곽묘에서 횡혈식석실로 지배층의 묘제 변화는 統治理念으로서의 佛敎의 수용과 중앙지배체제의 정비 그리고 영역확장과 맞물려 있다. 이처럼 지배층의 묘제변화 이유를 단순히 새로운 통치이념 수용과 지배체제의 정비에 둘 수는 없으나, 배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울산지역 횡혈식석실의 분석에 있어, 분석대상이 몇 기에 지나지 않고 일정 지역에 편중된 것이어서, 울산의 횡혈식석실의 전체적인 특징을 대변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타지역에서는 다양한 형식의 횡혈식석실이 나타나고 있으나, 울산지역에서는 방형류에 편재연도의 석실만 나타난다. ⅢB식은 경주지역으로부터 유입된 것이고, ⅢA식은 가야지역으로부터 유입되었다. 이들의 유입시기는 6세기 후반을 전후한 시기이고,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도입되었다. 울산지역 횡혈식석실의 도입은 최고 지배층에 의해 도입되었고, 지배자 집단 내에서도 소수의 사람이 무덤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5세기에 접어들면서 목곽묘가 적석목곽묘로 전환되는 지역과 수혈식석곽으로 전환되는 지역으로 대별된다. 전자는 중산리-양동을 잇는 해안쪽으로 신라의 영향력이 강했던 곳이고, 후자는 웅촌면과 언양 일대인데 재지적인 요소가 강한 곳으로 추정된다. 6세기 후반을 전후로 하여 울산의 내륙과 해안지역에 경주지역 횡혈식석실의 한 형식인 ⅢB식이 도입된 것은 신라의 중앙집권체제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