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도시는 다양한 기능이 집적되고 또한 이러한 기능들이 공간적으로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도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관점 즉 “도시시스템”적 관점에서 울산이라고 하는 도시의 공간적 정체성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울산이 공업도시로 출발하는 시점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조선시대 및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되었던 공간적 상황과 그 특성을 규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울산이라고 하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주요 기능들이 공간적 배치되어 가는 과정과 함께 이들이 상호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전통적 지방도시 울산이 국가지정 공업센터로 지정되면서, 공업지역이 설치되고 이와 함께 물류수송을 위한 도로와 항만, 노동자들을 위한 주거지,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떠받치기 위한 상업지역과 문화시설 등과 다양한 사회기반시설들이 공간적으로 어떻게 배치되어 지금의 공업도시 울산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지도를 이용한 시각적 자료로 작성 분석하여 공간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1962년 이후 토지구획정리 및 택지개발, 사택지 건설 등과 같은 다양한 개발 사례들을 시계열적으로 정리하여 공업지역 및 기존의 시가지와의 입지적 관계성을 비교분석하고, 또한 이 과정에 새롭게 건설되거나 정비된 도로 등의 사회기반시설들의 건설과정을 함께 정리하여 울산이라고 하는 도시의 공간적 시스템이 구축되어 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한 연구방법으로써 먼저 지금까지 울산을 대상으로 한 연구 성과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관보와 각종 보고서 및 통계자료 등과 같은 문헌 자료와 함께 제작시기가 다른 지형도 및 항공사진, 때에 따라서는 지적도 등의 시각자료를 최대한 수집·분석하여 시간적 흐름에 따른 울산의 도시시스템의 변화양상을 시각적으로 작성·분석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살펴본 공업도시 울산의 공간적 변화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일제시대의 울산은 그 중심을 울산면에 두고 있으면서 조선시대까지의 또 하나의 시가지로서 병영성이 도시적 기능을 상실하면서 시가지로서의 공간적 특성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한편 일제시대에 들어 일본인들에 의한 어업활동의 활성화로 인하여 장생포항과 방어진항이 급속도로 성장하였으며, 도시공간적으로는 방어진 지역의 시가지로의 성장이 매우 급속도로 이루어져 울산면과 병영성이 있던 하상면에 이어 울산지역에서 세 번째로 큰 인구규모 등 시가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시기였다. 하지만 방어진 지역의 이러한 시가지화에도 불구하고 울산면 지역 즉 기존의 중심지와 연결되는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는 등 도시시스템적 측면에서 중심지와의 관계성은 약했던 것이 특징이었다.
뿐만 아니라 1940년대를 전후로 하여 울산을 공업도시로 정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케다 스케타다는 울산을 대상으로 인구 50만 공업도시계획을 수립하여 1943년 기공식을 거행하고 실재 축항공사 등에 임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는 원산에 있던 정유공장을 울산에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여 전체 공정의 약 70%까지 진행된 상황에 해방을 맞이하여 공사가 중지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사업들이 이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면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도시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에 따라 지금의 신정동에서 삼산으로 이어지는 지역이 신시가지로 개발되었다. 특히 이 계획이 이후 울산의 전체적인 도로망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기 태화강 남쪽의 신시가지 지역이 일조나 태화강의 강줄기 등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남북방향의 지형축과는 다른 축을 형성하게 된 것은 당시 수립되어있던 울산역 이전과 그에 따른 철도노선에 의한 축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구 지역에 있어서도 기존의 울산읍성 및 병영성의 도시축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축을 따르는 토지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이후 진행된 대규모 사택개발에서 이 축에 따라 토지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기존의 남북축과는 다른 틀어진 축을 새로운 시가지의 개발축으로 삼게 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울산의 도시공간 축이 매우 다양하게 섞이게 되었으며, 이들 신개발지들이 공간적으로 퍼져나가 기존의 시가지지역과 만나게 되는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도시공간을 형성하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이후 1970년대에는 기존의 도시기능이 분산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오랜 기간 울산읍성 지역에서 기능해 왔던 행정기능이 신시가지로 이전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교통 결절점으로서의 시외버스의 터미널이 기존 시가지의 외곽지역에 해당하는 우정동 지역으로 이전하는 등 시가지에 집중되어 있던 다양한 도시기능이 분산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는 동구의 방어진 지역과 시가지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정비되어 일제시대 이후 줄곧 제기되어 오던 시가지와 방어진 지역과의 관계성이 높아진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토지개발의 측면에서는 아직까지는 그다지 활발한 개발은 눈에 띄지는 않았다. 남구의 신정동 지역의 개발과 함께 기존 시가지의 외곽지역인 우정동, 학성동 지역에서 토지개발이 시작된 시기이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 비교적 활발한 토지개발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중구의 병영성 주변과 방어진 지역에서 대규모 토지개발이 적극적으로 진행된 시기이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후반에는 처음으로 공해지역 주민들의 이주사업이 시행된 시기이다. 이를 위해 태화동, 다운동, 삼호 등에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어 1990년대에 들어 그러한 공간적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는 삼산지구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성남동지역에 입지해 있던 백화점 등을 중심으로 한 상업기능과 함께 시외버스 및 고속버스 등의 교통기능이 삼산지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또한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 오던 철도노선 또한 지금의 장소로 이전되는 등 다양한 도시기능들이 분산되어 울산의 곳곳에 배치되었다.
이처럼 울산은 행정, 상업, 교통, 교육, 문화, 공업 등의 다양한 도시기능들이 곳곳에 분산되어 배치되는 형태의 공간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1970년대 도시계획에서 지향하였던 ‘다핵적 도시’로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목표로 하였던 다핵적 도시구조는 도시의 주요 기능을 분산, 특화하는 이른바 조닝(zoning)개념의 다핵적 도시구조였다. 이는 최근 서울을 비롯한 많은 선진도시들이 지향하고 있는 도심 이외에 도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부도심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다양한 도시기능을 다양한 부도심에서 수행하는 개념의 다핵적 도시공간구조와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울산은 다양한 기능들이 흩어져 있는 분산적 공간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다 더 도시로서의 매력을 가진 도시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능들이 분산되어 있는 공간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도시적 기능을 가진 부도심을 육성하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를 갖춘 도시시스템으로 정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