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 이곤수(동국대 겸임교수)외 1명 공동연구
본 연구는 ① 울산의 아이덴티티 형성의 원천 파악, ② 울산의 아이덴티티 구축의 역사적 맥락의 이해, ③ 울산의 도시이미지와 아이덴티티 형성에 관한기초 자료 구축에 대한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도시 이미지와 아이덴티티 형성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정리하고, 도시 아이덴티티 형성과정 분석의 기준을 구성하여 도시 아이덴티티 형성과정 분석에 적용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의 시각적·공간적 범위는 1960∼1970년대 울산의 내부 및 외부환경이며 각종 정부 간행물, 신문과 잡지, 방송자료, 통계자료 및 당시에 이루어진 인터뷰 조사를 원용한 역사적 접근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를 위하여 공업도시로 발전하게 된 울산시의 특성에 대한 분석과 산업도시로서 울산이 발전하게 되는 외부의 환경적 여건 점검을 통하여 울산의 아이덴티티 형성과정을 분석하였다.
신공업도시 건설로 야기된 1962년 이후 공업화의 단계와 목표는 정부주도로 이루어졌고 중화학공업 정책 추진을 위한 경제부처의 조직화나 중화학공업정책선언 등에서 울산의 아이덴티티는 대통령 수준에서 내부주도형으로 국가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데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울산은 역사적으로 그 유형상 리프레시(refresh) 형태와 체인지(change) 형태를 띠어 왔고 그 현상이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굳어 졌으며, 그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다.
산업화이전시기로서 극히 지역적 유동성이 미미하였기 때문에 산업화의 충격이 있기 직전까지 전통적인 인간관계, 전통적인 생활관습, 의식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으며 그때까지 울산의 아이덴티티는 완전히 생성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권력구조자체도 다른 지역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행정구조와의 일치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편, 전통사회가 해체되어 가는 1972년 이후를 기점으로 현재에도 남아 있는 공업도시의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당시로는 그것이 전통사회라는 이미지에 공업도시(산업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가 중첩되어 중층화해 온 과정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사회에서의 탈피로 공업도시로 변모하였다는 것은 체인지(change)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 완성된 원래 이미지와 다른 완전히 다른 정보를 도시가 지각한 것은 1972년까지도 남아있던 기존의 이미지를 고치고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즉 1972년부터 조선공장을 위한 공장부지의 매입 시작과 더불어 1972년 가을부터 본격적인 공장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 때 외래인이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그 당시까지 전통적인 관습과 전통속에 유지되어 있던 울산 전통사회의 경우 점차 그것이
전통성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이로써 울산의 산업도시 이미지와 아이덴티티는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울산이 공업도시라는 이면에는 좋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공해도시라는 나쁘거나 불리한 이미지에 대해서는 이를 일신할 수 있는 정보를 산출하는 것이 다음 세대에서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한계점도 노출되었다.
결론적으로 울산은 당해 도시에서 발생한 사실에 바탕을 두는 독특한 사항이나 지리적, 환경적 고유요소로부터 표출되는 요소 가운데 지역주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분야를 선정하는 것과는 달리 정부주도에 의해 그 이미지와 아이덴티티가 형성되었으며 지역에서 토착화된 다른 지역의 경우와는 외부환경 요소가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다.